제목은 하고 싶은 말이고 우연히 보게 된 글과 책
https://blog.naver.com/kazutoya/60198898433 사람들이 만들어 사회를 만든다. 사회가 만들어지면 그에 수반에서 법이 생겨난다.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이 생겨나고 사라져간 나라에도 각각의 법이 있었고, 현재 대륙을 가르고 있는 나라들 모두 각자의 법을 가지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나라에 따라서 법이 다르기 때문에 그곳의 법을 숙지하지 않으면 여행이라는 것도 꽤나 고역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만든 사회라는 같은 단어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법은 다 다르다. 각 나라마다 준수해야 하는 기준이 다르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정의라고 한다. 법을 정의의 실현으로 본다. 정의의 여신인 테미스가 법의 상징이 된 것도 그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위용있는 여신의 모습을 보면 법은 지켜야만 하는 정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가끔 보면 정의라는 것은 참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한 사람이 법정에 섰을 때 그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질 지 결정하는 것은 판사겠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부 다 다를 것이다. 특히 변호사와 검사는 그 대립의 극에 서있을 것이다(원고와 피고도 마찬가지겠지만). 똑같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주목하는 법이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어떻게 하면 형량을 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무거운 벌을 줄 수 있을까. 의뢰인, 변호사, 검사, 판사 모두 동상이몽에 빠진다. 특히 미국에서 자주 시행되고 있는 배심원제도는 더더욱 그렇다. 법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기준을 내세워 판결을 유도한다. 누군가에게는 만족할 결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한마디로 누군가에게는 정의롭게 느껴지지만 누군가에게는 미심쩍게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정의와 법이라는 것이 가지는 이중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스캔들의 심리학에서 봤던 빌 클린턴의 거짓 증언에서부터 작가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공대 사건 까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과 왠지 법조계에서만 알 것 같은 비밀을 들추는 듯한 내용들이 있어서 재밌었다. 무엇보다 어느 누가 잘했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게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어느 한쪽의 편을 들며 서술해 나갔다면 아마 정이 떨어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히려 반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라면서 말이다.
지금은 공무원과 연예인이 대세지만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인기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법조계는 이런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들과 꽤나 친한 것 같다.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의료계이니, 판사, 변호사, 의사 등등 강력한 직업군들이 법과 정의의 사이에서 우리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 가장 법적으로 잘 살 것 같은 판사 중에서도 골치덩어리가 있고,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곳의 이익을 중시하게 되면 결국 좋지 않은 결과만 남는다. 뒤에서 벌어지는 암투에서부터 정말 어이없는 판결까지. 법이라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의 하나지만 왜곡된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 법학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니만큼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것 같다. 읽으면서 이런 것을 써도 되나 할 정도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글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를 법이라 여겨왔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실수투성이다. 법이라는 것은 약자의 편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 부당한 판결이라 여겨지는 판결이 내려지게 되는 건 그만한 이유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비열한 전략이 말이다. 이런 면에서는 아직도 나아갈 길이 바쁜 게 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누구에게나 정의롭게 집행될 수 있는 법은 없다. 진실을 담고 있지만 진실 그 자체, 정의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 법이다. 그래도 없으면 역시 살 수 없는 것이 법이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사회라는 것을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법. 그 법을 악용하는 이상한 의뢰인, 판사, 변호사 그리고 의료계는 각성해야 할 것이다.
[출처]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 스티븐 러벳|작성자 Carbon
https://cafe.naver.com/bookishman/379072
미국 법학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는 스티븐 러벳 법학 교수가 들려주는 논쟁의 중심에 선 재판 이야기와 상식과 정의의 딜레마가 안고 있는 현실,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과 윤리성의 문제 등 법과 정의의 모호하고 양면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정의의 심판을 받아라! 라는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속에 힘을 잃고 가는 사회에서 사법체계의 청렴성,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가 이 이 책에서 알려주고 싶어하는 바다. 의뢰인편, 변호사편, 판사편, 법학계편, 의료계편으로 나눠 부정적인 사례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Importance of Being Honest 정직함의 중요성인데 의뢰인이나 변호사는 진실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일단 생각하기 마련이다. 의뢰인조차 자신의 변호사를 속이려 드는 거짓말을 일삼는 사례를 통해 (빌 클린턴과 오스카 와일드 사례) 도덕성과 청렴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반면, 명백하게 선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딜레마도 있다. 월마트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하면서 불법 사진을 보고 경찰에 즉각 제보해서 영웅이 된 한 여성은 그 일로 직장에서 해고됐다. 상관과 상의 없이 고객의 사진을 유출했기 때문이었는데 법원은 월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사안 자체가 딜레마인 경우도 있었다. 일명 '원숭이 재판'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25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된 생물교사의 사례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은 진화론측 변호사의 종교 경멸 막말로 재판결과대로 승리한 것도 아닌 결과적으로는 부끄러운 사례를 남기게 하였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최승희 사건은 가슴이 아픈 사례다. 기숙사에서 이미 1명 사망, 1명 부상을 알게 되고도 인지오류 함정에 빠진 초반 대응으로 엉뚱한 용의자로 확정 후 다른 가능성을 배재하게 된 탓에 캠퍼스 안전을 강화하지 않고 해제시켰다가 결국 32명 사망, 28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다. 저자는 인간의 인식에는 인지오류가 내재해 있고 거기에 면역된 사람은 판사나 변호사는 물론 아무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인지오류의 만연으로 법률 진상조사의 표준개념에 심각한 결함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 마지막 증거를 다 받을 때까지는 판단유보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럴듯한 연결성을 긋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고 판사나 배심원은 그 선을 분류해야만 한다.
법조계보다 더 못한 의료계의 고전적인 직업 문화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원인이 무엇이든 의료과실은 만연해 있지만 현재 소송체계가 그것을 다루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소모도 많고 무엇보다 불확실하며 소송이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 해도 그것의 기본적인 목적은 보상이지 의료 체제 개선이 아니라는 것. 환자에게 사실을 고지하고 승인을 받는 개념도 의료계에서는 늦게 정착됐으며 변호사업은 사업으로서 법조윤리도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상업적 관계를 촉진하도록 발전해왔지만 '의사의 명령' , '변호인의 조언' 이 두 업계의 차이를 잘 요약한 단어처럼 의료계의 문제점을 심각히 다루고 있다.
여전히 전문가 윤리 시스템이 개인의 선택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지, 나쁜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소송을 일으키는 형국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고 한다. 좋든 싫든 사법체계는 모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하고 모든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리려 하며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법은 진실을 담는 가장 안전한 그릇일 뿐이라는 것.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이슈가 된 법 체계의 부조리를 폭로한 이 책은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례가 없어서 조금은 덜 흥미진진한 면도 없진 않았다. 사례마다 정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저자의 시각은 제법 신선하며 다시 심사숙고해 볼 동기를 제공한다.
[출처] [서평]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책을 좋아하는 사람) | 작성자 인디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