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직접 만들었음이 틀림없는 천재들에게도 빈틈은 있었다. 베토벤은 두자리수 이상의 덧셈에서 헤맸다 하고, 모차르트는 경제 관념이 없어서 늘 고통받았다. 사기가 의심될 정도로 완벽한 천재는 따로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 모차르트·베토벤에 비해 인지도가 확 떨어지지만 천재성, 아니 ‘신동성’은 월등했다.
생상스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만든 때는 1838년쯤(만 2세)이었다고 전해지며,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자필 악보엔 1839년이라고 써있다. 아직은 놀랄 일이 아니다. 7세부터 라틴어를 읽었고, 식물학과 지질학 독학을 시작했다. 문제는 천재성이 오래 보존됐다는 점. 생상스는 프랑스 천문학회 정회원이 됐고 시와 희곡을 썼다. 미국의 음악 비평가 해럴드 C.숀버그는 “아마 그의 IQ는 어떤 방법으로 측정해도 최고치를 훌쩍 넘었을 것”(『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2』)이라고 썼다.
‘천재들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이라고 탄식했던 사람들이 86세에 세상을 떠난 천재 생상스의 장수(長壽)를 한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았던 점은 의아하다. 그의 작품 중엔 ‘동물의 사육제’ 중의 ‘백조’, 또는 거대한 오르간의 음향이 들어간 교향곡 3번, 바이올리니스트의 손가락 빠르기를 시험하는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정도가 자주 연주될 뿐, 프랑스 바깥에서도 언제나 추앙받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합창, 성가곡, 크고 작은 규모의 앙상블까지 안 쓴 장르 없이 섭렵한 그의 음악에 대부분 기교와 장식이 듬뿍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생상스는 ‘아름답지만 깊이도 있는가’라는 질문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완벽이 피상적이라는 평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화려한 작곡가로 생상스를 기억하다가, 그의 마지막 작품을 들으면 다소 충격을 받는다. 세상을 떠난 해인 1921년에 생상스는 돌연 조용하기 그지없는 세 곡을 발표한다. 차례로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위한 소나타인데 작품 번호가 166~168번이고, 끝번인 169번인 짧은 피아노곡을 제외하면 정식으로 쓴 마지막 작품들이다. 친구에게 “그동안 자주 듣지 못했던 악기들을 위해 곡을 쓰고 싶다”며 세 곡을 잇달아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세 곡에서 우리가 천재에게 기대하는 재주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음악은 마치 할 이야기를 순서대로 전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 특별히 보여주려는 것도 없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유머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천재만이 창조할 수 있는 상태일지 모르겠다. 생상스의 조용한 서거 100주기는 지금처럼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