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포스트 진실(post truth)' 시대,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의 여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라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그 정도로 소셜미디어, 심지어는 뉴스 채널에서도 가짜 뉴스가 계속해서 생성되고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가짜 뉴스가 점점 더 팽배해져서 극단적으로 대부분의 정보가 가짜인 세상이 오게 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가짜 뉴스를 퍼트린 인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에서 오래도록 가짜 뉴스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 수준, 미신이라도 붙들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 등이 하나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마이클 발레브 애리조나 주립대의 심리학자 등에 의하면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데에는 '사회적 기능' 또한 존재한다. 비이성적인 듯 보이는 행위에 사실은 어느 정도 '이성적인' 사회적 쓸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발레브는 크게 ⓛ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② 충성심을 강화하고 시험하기 위해, ③ 라이벌을 침몰시키기 위해 가짜 뉴스가 생성되고 유통된다고 본다.
①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함
우선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를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하지만 여기에는 '유명세'가 큰 도움이 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스포츠 선수, 연예인, 정치인이 되는 것, 또 요즘 흔히 말하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데에는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노벨상을 탈 만한 굉장한 발견을 했다고 해도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알고 있다가 세상을 떠나버리면 아무런 지위도 영향력도 가질 수 없듯이 엄청난 발견이나 지식 또한 세상에 알려야만 그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정말 특출나고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좋지만 문제는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듯한 거짓말 또는 사기를 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당장은)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피 몇 방울만 가지고 수백가지의 건강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사기를 쳐 천문학적인 돈을 가지고 튈 뻔 했던 테라노스 사장이나 자신이 엄청난 유럽 부잣집 딸이라고 사기를 쳐서 거대한 액수의 대출을 성사시킬 뻔 한 애나 델비, 소셜 미디어 등에 거짓으로 점철된 멋진 모습들을 전시함으로써 선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많은 이들이 한 예다.
② 충성심을 강화하고 시험하기 위함
가짜뉴스의 또 다른 사회적 기능은 충성심을 강화하거나 시험하는 것이다. 많은 이런저런 신앙이나 종교들에서 증명할 수 없고 추상적이기만 한 이야기들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는지 여부를 통해 진실된 교인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가름한다.
이 때 믿음의 내용이 허무맹랑하고 밖에서 이야기했을 때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수록 더 집단 내에서의 위상은 높아진다. 꼭 종교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지구 평평설을 믿는다는 이유로 친구와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은 사람들의 경우 자기처럼 지구 평평설을 굳게 믿어서 박해 받는 사람들과 더 깊은 연대감을 보이곤 한다.
우리들은 소위 깨어 있는 자들이고 남들은 안타깝게도 어둠 속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보이기도 한다. 그 안에서 점점 더 허무맹랑한 이론을 발전시켜 가면서 바깥 사회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높은 지위를 확보하기도 한다.
일례로 세기말 감성이 한창이던 1999년 해가 지나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고 오직 선택 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직접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믿었던 사람들 역시 가족과 전재산을 버리는 등 많은 것을 갖다 바쳤을수록 더 이후에도 계속해서 언젠가(?) 멸망이 올 거라며 해당 종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③ 라이벌 제거
물론 싫은 사람이나 집단을 해하기 위해 악의적인 거짓말을 퍼트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과거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화를 정당화 하기 위해 원주민들은 식인을 일삼는 야만인들이라는 루머를 공공연히 퍼트렸다고 한다.
지금은 특히 어린 여성 연예인들을 향해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이를 수익화 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가짜 뉴스가 돈이 되는 안타까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가짜 뉴스의 뒤에는 언제나 항상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보는 쪽과 해를 입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가짜 뉴스를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아니면 말고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잠깐의 흥미로 누군가의 삶이 충분히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요즘은 더더욱 단 몇 글자로 누군가의 삶을 망가트릴 수 있음을 기억하자.
Barlev, M., & Neuberg, S. L. (2025). Rational reasons for irrational beliefs. American Psychologist, 80(1), 79–90. https://doi.org/10.1037/amp000132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