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50분 재판 동안 단 두 번 표정 변화
'피식' 웃고, 눈 감은 채 입꼬리 올리는 모습
모두 홍장원 발언 때…불편한 기색 보인 듯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재판 내내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으나, 홍 전 차장이 발언하는 도중에는 황당하다는 듯 웃는 등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이 대심판정에 들어서자,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일제히 일어나 그를 맞았다. 윤 대통령은 이후 세 명의 증인에 대한 신문 등이 진행되는 6시간 50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들 3명에 대한 신문은 이 전 사령관, 여 전 사령관, 홍 전 차장 순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국회 측과 대통령 측의 신문이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입술을 꾹 다물고 눈을 꼭 감은 채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윤 대통령이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인 때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낸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인 신문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이 재판정에 출석하며 90도로 인사하자 곧바로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이며, 시작부터 냉랭한 기운을 풍겼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발언을 듣던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의 발언이 이어지자 눈을 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중간중간 미묘한 표정 변화로 홍 전 차장의 발언에 불편한 내색을 드러냈다.
무표정이던 윤 대통령이 '피식' 웃은 순간은, 홍 전 차장에 "제 경질 이유는 대통령께서 유일하게 알고 있다"고 답변한 순간이었다. 홍 전 차장은 자신이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경질된 거라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또 홍 전 차장이 조태용 국정원장 관련 진술에서 "30년 정도 조직 생활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하자 눈은 감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
홍 전 차장의 답변은 국회 쪽 대리인이'12·3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 등을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에게 보고하자 외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검찰 조사 진술 내용을 읊으며 조 원장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인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나온 것이다.
윤 대통령이 6시간 50분 중 보인 단 두 번의 표정 변화는 모두 홍 전 차장이 '체포 지시를 폭로했다가 경질당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을 때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홍 전 차장의 증인신문이 끝나자 재판부가 발언권을 주기도 전에 먼저 발언권을 요청하고 이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제가 12월 4일에 계엄 해제하고 저녁에 집에 있는데, 조금 늦은 시간에 국정원장이 전화했다"며 "사실 대통령께 진작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자세히 말씀드리긴 뭐하지만, 정치적 중립 문제 때문에 홍장원 1차장을 좀 해임해야겠다 그래서 제가 다른 거 더 안 물었다. 원장이 그렇게 판단하면 그렇게 하십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홍 전 차장에게 전화한 상황에 대해 "전화를 받으니까 벌써 딱 반주한 느낌이 났다"며 "방첩사가 간첩 수사를 잘하게 도와주라고, 계엄과 관련 없는 얘기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尹 대통령 "호수 위 달 쫓는 느낌",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윤 대통령은 이날 변론에서 증인에 대한 신문이 끝날 때마다 작심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에게 증인을 직접 신문할 기회를 주는 대신, 증인에 대한 양측 신문이 끝난 뒤 의견진술권을 부여했다.
그는 이진우 전 사령관에 대한 신문이 끝난 뒤 "이번 사건을 보면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지시를 받았니'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나온 얘기의 취지는 수방사 한 열 몇 명 정도가 국회에 겨우 진입했고, 또 (국회) 7번 입구 부근에 총기도 휴대하지 않고 이렇게 있었다"면서 "상식에 근거해서 본다면 아마 이 사안, 실체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여 전 사령관에 대한 신문이 끝난 뒤에는 "계엄이 신속히 해제됐기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에 군을 투입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한 뒤 "점검하도록 시지한 것"이라며 "실제로 하드웨어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어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도 압수한 게 전혀 없는 것으로 보고받았다. 그만큼 계엄 신속히 해제됐기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말씀"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국회 탄핵소추단장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발언권을 요청한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랬으면 오늘 헌재의 이 심판이 없었을 것"이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정 의원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군 장성들이 지금 구속돼서 재판받고,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재판이 휴정하자 심판정 일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하는 말들로 웅성거리기도 했다. 특히 방청석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말이 안 되는 얘기다"라며 대화를 나눴다.